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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향 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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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보와 연보

    착함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해서 옛 의리를 설명하면서 주위 사람을 착함으로 이끌었다.

    계  보

    연  보

    -1598년 11월 24일

       안동 금계리(춘파)에서 아버지 경당 장흥효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나다.


    -1608년(11세)

       소학, 십구사략 등을 스스로 깨우치다.


    -1610년(13세)

       학발시, 경신음, 성인음, 소소음 등을 짓다.('맹호도'도 이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


    -1615년(18세)

       어머니가 장질부사로 몸져눕자 집안일을 맡다.


    -1616년(19세)

       영해 인량리의 재령이씨 운악 이함의 셋째 아들 석계 이시명과 혼인하다. 이시명은 광산김씨와 사별하고 1남1녀를 두었다.


    -1622년(25세)

       친정 어머니 안동 권씨 부인 운명하시다. 친정에서 어머니 3년상을 치르다. 아버지를 재혼시켜드리다.


    -1631년(34세)

       석계종택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으로 분가하다. 도토리 나무를 심다. 시아버지의 발병으로 다시 인량리로 돌아와 보살피다.


    -1632년(35세)

       시아버지 운악선생 운명하시다.


    -1633년(36세)

       친정아버지 경당선생 운명하시다.


    -1634년(37세)

       이복 큰동생을 시댁으로 데려와 가르치다.


    -1636년(39세)

       병자호란 발발하다.


    -1638년(41세)

       남편 이시명이 무고한 옥사와 재판을 받다. 무혐의로 풀려나다.


    -1640년(43세)

       영해 석보면 원리동으로 완전히 이주하다. 모은 재산을 큰조카에게 물려주고 나오다. 도토리 나무 숲을 가꾸어 한 번에 150여명의 끼니를 삼을 만큼되다.


    -1644년(47세)

       시어머니 진성이씨 운명하시다. 모시고 살다가 운명하시고 인량리에서 3년상 입다.


    -1652년(55세)

       병자국치를 슬퍼하며 영양군 수비로 이사하여 은거를 시작하다. 식구 30여명과 함께 살다. 자식들에게 본격적으로 강의하는남편을 따라 명상과 학문, 노동과 인생의 재발견을 위한 생활을 하다.


    -1664년(67세)

       손자 신급(벽계 이은), 성급(밀암 이재)에게 학문을 권려하는 오언시를 써 주다.


    -1670년(73세)

       '희우시'를 쓰다.


    -1672년(75세)

       한글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저술하다. 가뭄이 극심하여 현종이 대책을 전국에 걸쳐 구하다. 자식들을 모두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 보내다. 부부만 안동 도솔원으로 옮겨 초근목피로 생활하며 자족하다.


    -1674년(77세)

       안동부 대명동(풍산읍 수곡리)으로 이사하다. 남편 이시명 운명하시다(84세).


    -1680년(83세)

       7월 7일 영해부 석보에서 넷째 아들 숭일의 집에서 운명하시다. 안동 대명동까지 운구하여 장사지내다.


    -1689년(8월)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 직함을 받음으로써 정부인 교지가 내려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