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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속의 일화

    문화관광부 지정 한국의 문화인물 '깨달은 조선여인'장계향!

    아버지와의 어린시질 "애야 아까 내가수업을 하다가 보니, 너도 저만치서 원회운세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구나.
    그래, 우주의 1 년인 대주기가 몇 년인 줄 알겠느냐?
    그리고 1 회는 또 몇 년이고? 소개벽은 언제 일어난다고 하더냐?" 어린 장씨는 잠시 눈 을 감더니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해냈다.
    "우연히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몸을 숨기고 계속 들었어요. 우주의 1년은 12만 9600년이라고 하시면서 그게 원(元)이고, 원을 12로 나눈 것이 회라고 하셨으니까 음 1 회는 1만 800년이지요.
    그리고 바로 1회마다 소개벽이 일어나는 것이고요."
    "아, 제법 이해하고 있구나, 더 설명할 수 있겠느냐?"
    "네, 1 회를 다시 30운(運)으로 나누면 1운은 360년이 되고, 이를 다시 12로 나누면 1세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1세는 30년인 셈 이고요.이는 우주로 치면 한 시간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
    그러니까 인간의 한 세대인 30년은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시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딸의 대답을 들은 경당선생은 약간 놀랍기도 하면서 매우 흐뭇하였다. 왜냐하면 아까 제자들에게 원회원세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했을 때 이같이 잘 이해하면서 숫자까지 정확하게 대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 살 정도밖에 안 된 자기 딸이 저만치서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생각나서 물어본 것인데, 딸아이는 잠깐 동안 눈을 감고 계 산하는 눈치더니 일일이 숫자를 대면서 대답하는 게 아닌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경당선생은 그날부터 아침저녁 틈만 나면 딸아이와 마주 앉아 <소학〉이며 <십구사략〉등을 직접 가르쳤다. 가르쳐준 내용을 묻고 딸아이의 답을 듣는 것이 아주 재미가 났 다. 안동 장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층분히 받으며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장홍효는 그 때까지 자식이라고는 오직 그 딸 하나였는데, 총명한 딸아이를 가르치는 재미에 틈틈히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안동 장씨의 아버지는 딸이라고 해서 특 별히 가사 노동에 국한해서 교육시키지 않았다 .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면서 자분자분 가르쳐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 려진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있다.
    더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존재의 인정은 든든한 심리 적 지지대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안동 장씨의 여유 있는 품성은 아마도 이런 시절과 관련 있을 것이다.



    자애로운 성품,조용한 카리스마 안동 장씨의 젊은 시절 일화라고 한다. 어느 날 안동 장씨가 베를 짜고 있는데, 어린 계집종의 실수로 짜고 있던 천에 불이 붙었다.
    "앗! 마님 ! 불이 붙었어요." 그 계집종은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 사이 불은 더 번져 짜던 천의 반 이상이 타들어 갔다.
    베 짜는 일의 중요함과 그 수고로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계집종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각오 했던 야단이나 성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님은 평상시 낯빛 그대로 짜다 만 베에 번지고 있는 불을 고더니 조용히 뒷정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황공하기 그지 없었다. 저도 옆에서 거드는 시능을 하면서, 베틀에서 타다 만 베를 내리고 타버린 부분을 갈무리하는 일을 도우며, 주인마님의 눈치를 봤다.
    주인마님은 여전히 언제 무슨 일이 었었나는듯 끝내 조금도 꾸짖거나 화내는 기색이 없이 그저 "괜찮다"라고는 하셨다.
    계집종은 한마디도 못한 채 그저 황공할 뿐이었고. 이 이야기를 정해 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장씨 부인의 아량에 감복했다고 한다.

    안동장씨의 성품을 알게 해주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그녀는 어린 여종들을 자기 딸처럼 여기고 병 이 나면 반드시 음식을 만들어주고 보살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프나? 불편한 것은 없느냐?"라고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종들을 가르칠 때도 절대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허물이 있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그냥 조용조용히 타이를 뿐이었다.
    그래도 종들이 그녀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고 한 다 . 신분제 사회에서 종이란 인격 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존재였다.
    그런 종들이 잘못했을 때에도 조용히 타일러 가르치는 안동 장씨를 보고 , 주변 다른 집의 종들이 "장씨 마님 밑에서 종살이 하고 싶다"라고 하며 부러워했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안동장씨는 온유한 가운데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던 여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애로운 성품,조용한 카리스마 장씨 부인은 배우면 배운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평소 "책은 책대로 읽고, 사람은 사람대로구나"라며 앎과 삶이 따로 노는 세태를 탄식하였다.
    그녀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교육에서 강조되었던 내 용은 선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녀는 늘 아들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착한 일은 사람들이 바라는 거란다,저 어린아이들 조차 자기네들을 가리키며 착하다고 하면 기뻐하고 착하지 않다고 하면 성을 내지. 왜냐하면 선이란 사람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내가 성현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느냐?
    그런데 만약 성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평범한 삶을 넘어서는 뛰어난 일을 한다면 그건 따라 할 수 없을게다 .
    하지만 성인은 생김새나 말씀이 평범한 사람과 같고 또 그분 들이 하시는 일이 모두 우리들이 날마다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걱정할 건 그분들을 따르지 못하는 거지. 배우자고 마음 먹는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 겠느냐?"
    과거 준비를 위한 경전 공부는 그녀의 교육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유교적 가르침의 본질을 찾아 실천하 려는 태도를 지녔으며 , 이러한 태도는 훗날 그녀의 자손들이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산림처사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배운것을 실천하고 성인의 가르침 그대로 종기를 원했던 그녀는 남편에게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남편은 병자호란 후 세상을 피해 은둔을 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장씨 부인은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숨어 생활하시니 아들 손자들에게 시와 예 를 가르치셔야 마땅하지 않은가요? 왜 세월을 그냥 보내시나요?"라고 충고하였다.
    부인의 이런 충고는 남편 이시명이 후학들을 기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은둔한 남편의 삶의 울꼬를 바로 잡아준 셈이다.

    병자호란은 남편만이 아니라 그녀에 게도 치욕으로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안동 장씨가 비록 자신이 시집오기 전에 지녔던 지적인 능력을 깊이 감추고 지냈으나, 그녀의 모든 관심사가 가정 안으로만 항했던 것은 아니다.
    이현일은 그녀의 이런 성항을 놓고 "어머니는 호방하고 맑은 기운을 기 르셨고 사심 없는 지식과 멀리 내다보는 도량을 가지셨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그녀의 관심사는 집안일에만 국한되지 않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