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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향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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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향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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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을 역사로 만든 정부인 안동장씨

“착함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해서 옛 의리를 설명하면서 주위 사람을 착함으로 이끌었다.”
정부인 안동장씨는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촌에서 타계했다.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를 역임함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가 내려져 이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다.

탁월한 안목의 소녀 시인

소소음 (蕭蕭吟) 창밖에 소록소록 비 내리는 소리이 빗소리는 자연의 소리 자연스런 빗소리 듣노라면 내 마음도 자연 되지요

정부인 안동장씨는 노량해전을 대미로 7년간에 걸친 대전쟁, 임진왜란이 막 끝나가던 1598년 11월, 아버지 경당 장흥효(1564~1633)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의 외동딸로 안동 검재(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당대 학자로 인정받았으며,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한 집안 분위기 탓일까, 어린 소녀는 사랑방을 기웃거리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곁눈으로 배웠다. 아버지는 퇴계 학풍을 이어 받은 학자답게 '몸을 삼가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총기 있던 소녀는 10세 정도 되는 나이에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쳤고, 13세가 되어서는 <백발 늙은이>, <몸가짐을 조심하다>, <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주옥같은 시들을 지었다.글씨도 곧잘 써서 그녀가 쓴 초서체 '적벽부'는 당대 서예가 정윤목이 기풍과 필체가 호기로워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평할 정도였다.




어질고 바른 어머니

나이 19세 되던 1617년 영해 나랏골에 살던 재령 이씨 가문의 이시명과 결혼했다. 남편은 이미 광산 김씨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둔 27세 청장년이었다. 남편과는 여덟 살 차이, 게다가 계실로 들어간 자리였으니 새색시로서는 만만찮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색시는 전부인 소생 6살배기 상일의 자식 공부를 위해 어린 상일을 남쪽으로 5리 남짓 떨어진 남경훈 선생 집으로 매일 같이 업고 다니는 열의를 보였다. 새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아버지 이함은 동리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며느리 얘기를 했다."저 어미 잃은 아이는 어미를 잃은 것이 아니고 죽은 어미가 살어온 것이다" 이후 그녀는 6남 2녀를 낳아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 태기가 있는 동안 그녀는 과일, 채소와 같은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모양과 빛깔이 온전하지 않거나 바르지 않은 것은 입도 대지 않았다.

하루는 동네잔치로 동리 이웃들이 모두 모여 기생을 부르고 음악을 베풀고, 처용무를 펼치는 일이 있었다.마침 임신 중이던 그녀는 종일토록 머리를 숙이고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접한 친정아버지는 "너는 내게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구나"며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택이었을까. 그녀는 전부인과 자신의 소생 7남 3녀를 모두 한결같이 훌륭한 인물로 키웠다. 그중에서도 둘째 휘일, 셋째 현일, 넷째 승일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학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손자 이온, 이재, 외손자 이상정 또한 문명이 높았다.

친정도 살뜰하게 보살피고

그녀는 친정에 계신 부모가 항상 걱정이 되었다. 시댁으로부터 200리 떨어진 친정에는 돌보아드릴 자식 하나 없이 늙어가는 부모가 살아 계셨다. 외동딸을 멀리 영해로 시집보낸 친정 부모의 적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부모님께 문안을 여쭙고자 한 해 한번씩 친정 나들이를 했다.
아버지가 환갑이 되던 해인 162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게 된 아버지와 차마 떨어질 수 없었던 그녀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허락하에 친정에 2년을 더 머물면서 아버지를 모셨다.



계모를 맞아 친정의 대를 잇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1633년 아버지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계모와 4남매를 시집으로 데려와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그리고 시집 근처에 외가의 사당을 짓고 조상 제사를 받들게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친정 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의 혼사를 주선했으며, 이후 동생들이 고향 검재에서 일문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선행과 실천을 강조하는 가르침

그리고 아버지 살아 계실 제, 아들 상일, 휘일, 현일 삼형제를 외조부에게 보내어 학문을 익히도록 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배려로 슬하의 아들 7형제 모두가 문명으로 현달해, '안릉가 7룡'으로 알려졌다. 특히 셋째 갈암 이현일(1627~1704)은 영남을 대표하는 산림으로 천거되어, 1692년(숙종 18) 이조판서를 역임했으며, 남인과 서인의 정쟁이 한창이었던 현종-숙종 연간(17세기 중후반)에는 남인의 영수로서 크게 활약한 바 있다. 이현일 대에 이르러 재령 이씨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녀는 자식들이 자만에 빠져 혹여 행신을 그르치지 않을까 늘 근심했다."너희들이 비록 글 잘 한다는 명성은 있지만, 나는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선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문득 기뻐하며 잊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며 늘 자식들의 방만과 나태를 경계했다.

반려_서로 공경하며 성취하는 삶

그녀에게도 시련은 따랐다. 그녀가 39세 되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청나라 기병의 기습공격을 맞아 국왕 인조는 광주의 남한산성에 은거하면서 저항했다. 경상도를 비롯한 각지에서는 의병을 결성하고 남한산성으로 진격을 개시했지만, 인조는 그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미증유의 위난에 직면하여 아녀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동리 이웃들에게 의병 창의를 역설했다. 남편 이시명은 이러한 현실에 낙담하여 세상의 연을 끊고 살 것을 결심했다.이후 그는 영양 석보에 은거하면서 숭정처사로서 한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출세와 영달을 포기하고 실의에 빠진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학문에 전념할 것과 제자 양성을 권하면서, 남편의 절의를 드러내고 양심에 따라 사는 학자의 아내로서 헌신했던 것이다.

드물고도 드무네

7남 3녀의 어머니로, 학문적 명성이 자자한 수재 자식들을 둔 어머니로 누구에게나 칭송을 받던 다복한 그녀였지만, 딸 둘과 자신이 낳은 큰 아들 휘일과 막내 운일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평생을 근신과 공경으로 조용하게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여중군자'라 칭송받던 장씨는 73세가 되던 해에 생애를 담담하게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심사를 <드물고도 드무네>라는 시로 표현했다.

세상에 나서 칠십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문 일인데
칠십하고도 세 살을 더 사니 드물고도 드무네
드물고도 드문 중에 자식들도 많으니
드물고도 드문 중에 또 드물고도 드무네

여성의 학문적 자유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대를 살다간 양반가의 여인, 장씨부인.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가치로운 삶을 살다간 그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케 하는 스승이자,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가르쳐 준 사표가 되고 있다.

나이 일흔 무렵에는 눈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자손들을 위해 애써 음식하는 법을 정리하여 남겼다.음식디미방이라고도 하고 규곤시의방이라고도 불리는 요리책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기록된 요리서이자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으로 주목받고 있다.장씨는 1680년 83세를 일기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양 석보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셋째 아들 현일은 "내가 노둔하고 우매하여 지극한 가르침을 따라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소 야비한 말과 버릇없이 구는 말을 내 입에 올려 말하거나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로 어머니께서 어릴 때 부터 금지하고 경계한 탓이다"고 <정부인 안동 장씨 실기>에서 그 고마움을 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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